개껌을 만드는 개.intro
어떤 블로그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남자가 게임을 하는 것 = 개껌을 씹는 개"
유쾌한 비유는 아니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난데없이 개 이야기를 좀 하자.
생후 4, 5개월의 강아지는 이갈이를 하는
시기라, 이빨이 간지러워 무엇이든 물고
뜯는다. 이 과정에서 약한 이가 빠지고
튼튼한 이가 자란다.
성견이 되어서도 개껌을 왕왕 찾는다. 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진화론적으로 보면,
'개껌 씹기'는 생존에 중요한 신체능력을
유지하려는 본능적인 행동이다.
개에게 턱과 이빨이란 생존에 필수적인 기관.
단단한 먹이를 부숴서 먹거나 자신을 위협하는
상대를 물리칠 수 있다.
개껌 씹기는 이러한 상황을 위한 '대비'이자
'연습'이다. 이러한 생존 활동에 재미를 느낀
종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진화
론의 입장이다.
진화론에서 보면 ‘인간이 게임을 하는 이유’
도 별반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게임은 ‘시뮬레이션’이니까. 풀어서
말하면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연습’이다.
잘 알려진 ‘스타크래프트’를 예로 들어보자.
스타크래프트는 거점을 확보해 채취한 자원을
사용해 생산한 유닛으로 상대와 겨루는 게임이다.
현란한 마우스 컨트롤로 유닛을 조작하는 것 또한 게임의 백미 |
이 게임은 무엇의 연습일까. ‘전쟁’의 연습이다.
한정된 자원을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
한 사람이 승리하는 약육강식 시스템의 전형.
스타뿐 아니라, 많은 게임이 이 규칙을 따른다.
자원, 관리, 효율, 효과, 최적화. 익숙한 단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이 생존하는 방법, 즉
‘경제활동’의 AtoZ다.
그렇다면 오로지 게임만이 개껌일까. 아니다.
개껌은 언제나 존재했다. 오늘날 ‘문화 콘텐츠’
로 총칭되는 모든 이야기들 또한 인간이 재미를
통해 생존률을 끌어올리는 수단이다.
왜냐하면, 콘텐츠 소비행위는 곧 연습이니까.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
을 한다. 극중 상황에서 내리는 주인공의 선택을
마치 자신의 일인양 생각한다. 그렇게 상상하며,
해피엔딩에 기뻐하고 배드엔딩에 슬퍼한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경험은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정보로 머릿속에 저장된다. '내가 저 상황
이라면 어떻게 해야겠구나'라고 자동 학습한다.
이 정보는 기억 창고에 저장된 후, 실제로 그와
유사한 상황에 처하면 인간이 내리는 선택에 영향
을 끼친다.
로맨스 영화도, 무서운 공포영화도 미래를 위한
중요한 정보원인 셈. 시, 소설, 자기계발서가 그러
하고, 블로그의 글 또한 마찬가지다. 큰 감동을
주거나 달콤쌉싸름한 여운을 길게 남기는 이야기
일수록 더 강렬히 기억된다.
여담이지만, 이성을 판단하는 기준도 비슷한 것
아닐까. 적어도 연애 정도라면 말이다.
이제 널 보내줄게... 무의식 창고에... 큭 |
요지는, 재미있는 이야기일수록 우린 그것을
‘중요한’ 정보로 인식한다. 미래를 연습하는 활동
에 인간은 재미를 느끼도록 진화했다는 것.
이것이 아까 언급한 진화론의 입장이며, 콘텐츠
제작자가 늘 ‘재미’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재미는 많은 곳에서 온다. 특정 정보를 찾는 사람
에게 그것을 주는 것(타겟팅), 노력에 따른 보상을
보편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주는 것(밸런
싱), 그러면서도 '유쾌하게' 기대를 배반하는 것...
끝도 없다. 재미재미재미재미... 끝도 없지 않나.
어디서 재미를 그만 말할까는 각자가 정할 일이니.
수용자 입장에서 ‘재미’라는 경험의 로드맵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우선 간단히 말을 해 보자.
글자로, 그림으로, 소리로, 인간의 감각에 호소
하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말이다.
시인 지망생들과 시 습작 수업을 들을 때의 일.
어미 한 글자를 가지고 하루종일 고민하는 학생
이 있었다. 사례가 고리타분한가. 고리타분하게
진짜 그렇게 한다.
그러면 왜 그렇게까지?
그것이 시라는 텍스트를 읽는 독자의 상상과
경험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의미를 해치지 않고 단순함을 죽이지 않으면서
머릿속으로 글자가 쉬 읽히도록, 혹은 다음 줄로
넘어가기 전 어떤 상상의 여지를 줄 것인가, 어떤
기분으로 한 줄을 읽도록 할까를 고민하면서.
콘텐츠를 만든다는 건 그래서 수용자의 경험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판’을 짜고 ‘지도’를 그리는 일이 아닐까.
흥미로운 지도와 잘 작동하는 나침반 만들기
라고 하면 무리수라고 하겠지...
나도 사실 잘 모른다. 연애도 안 해본 사람이
더 잘 안다고 하지 않나. 지금 부려놓은 '멋있어
보이는', '재수없는' 말들에 대해, 늦어도 내년
즈음엔 '그게 아니었구나'라고 깨닫기를 바란다.
현실과 부대끼지 않는 이상론은 똥보다 못하니까.
멋모르고 내가 만든 지도가 이 지도일 수도 있다 |
남자와 여자는 다른 동물이다. 남자는 ‘스타크래
프트’, 여자는 ‘프린세스 메이커'를 좋아한다고
일단은 이렇게 말해보자. 진화론적으로 보면
각자가 자신의 생존률을 극대화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다르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남자에게 경제력, 여자에게 미모가 곧 ’개체’의
생존력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 왕자따윈 없단다.sadending |
하지만 전통적인 성 역할은 무너지고 있다.
아빠가 아이를 키우고, 아내가 남편보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세상. '충분히' 그렇지는
않다 하더라도,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
남녀의 성에 따른 사회적 역할이 변할수록,
여성들도 게임을 즐기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그 전에, 지금은 어떤 게임을 팔면 좋을까.
이런 것에 나는 관심이 있다.
진화론이 일반화할 수 있는 진리는 아니다.
모든 콘텐츠 범주를 포괄하지도 못하고.
내가 착용한 렌즈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시뮬레이션하는 이야기' 정도일까.
나는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이라기보다 이런 개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이 개가 이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쓸 거라고.
길이도 긴 주제에 오해의 소지가 많은 글인데,
앞으로 차차 풀어풀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끝!
와우~ 개껌이 떨어지지 않기를! 나도 빠른 시일 내에 개껌 씹기에 동참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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