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이 블로그에는 게임만 보면 짖는 개가 살아요

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책과 게임을 좋아하고 키 작고 안경 쓴 꼬맹이 (feat. Jane MCGonigal)




2010년 TED의 강연 동영상입니다. 강연자는 제인 맥고니걸(Jane McGonigal)이라는 게임기획자입니다. 네 그래요! 게임을 예찬하고 또 예찬하는 아주 건전한 강연이랍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게임을 그렇게 좋아하고 즐기는 것일까,
게임을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도 좋고, 이에 관해 관심도 쪼금 있는 편이지만, 게임이 게임을 하는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제 경험을 공유하는 건 어떨까 생각했어요.

맥고니걸 누나의 열정 가득한 강연에 뭐라 토를 달거나 덧붙이거나 하기보다는, 이걸 보고 그냥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것, 그걸 이제부터 써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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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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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저는 책 좋아하고, 뛰어노는 거 싫어하고, 입이 짧고, 창백한 얼굴에 안경을 꼈고, 키가 작고 숫기가 없던 꼬마였어요. 친누나의 증언에 따르면 혼자서 노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심지어 놀이터에서도 혼자 잘 노는 애늙은이였다고 합니다.

동네에 이런 꼬마 한 명씩은 다들 있었을 겁니다. 제 경우엔, 제가 그랬죠.

뭐 아무튼, 때는 바야흐로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전 초등학생들 주제에 학교 대항 패싸움을 하는, 초큼 무서운 동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있는 듯 없는 듯 공기같이 등교하고 무사히 하교하는 것이 매일매일의 최대 목표였죠.

그러다가 디아블로2라는 게임을 만났어요.
당시 '스타크래프트', '리니지'와 함께 대한민국 PC방 붐을 일으킨 악마의 게임이었죠.

어느샌가 저는 동네 PC방 사장님들이 알아보는 꼬맹이가 되었어요. 집에 컴퓨터가 별로 좋지 않았기에, 군것질을 포기하고 오로지 PC방에 올인했던 겁니다. 재밌어서 계속 하다가 보니, 몇몇 중고등학교 형들도 알게 되었고, 폐인 아저씨들과도 안면을 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한 폐인 아저씨와 심심풀이로 PK, 말하자면 '맞다이'를 했습니다. 1대 1로 각자의 캐릭터를 사용해 실력을 겨루는 것이죠. 승부는 쉽게 나지 않았고, 아저씨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어요. 욕도 좀 하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사람들이 점점 저와 아저씨 등 뒤로 와서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PC방 알바 형의 중재로, 승부를 내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습니다. 폐인 아저씨는 PC방을 옮기셨죠. 이 사건으로 저는 XX초등학교 '디아1짱'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싸움을 워낙 좋아하는 애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뭐든지 '짱'을 정하는 게 당연한 학교 문화였거든요.

조금씩 학교 복도를 지나가다 보면 절 알아보는 애들이 생겨났어요.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성격이 거친 친구들도 조심스레 자신의 캐릭터를 한 번 봐 달라고 했죠. "이거 다시 키워야 돼??"라면서요. 비밀리에 접촉해서 제 계정을 사겠다는 부잣집 도련님도 있었고, 저를 라이벌로 생각하는 겜돌이들도 몇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짱'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싸움'짱'도 디아블로2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되게 웃긴 일인데, 그 친구들도 어쨌든 내가 짱이라니까, 같이 PC방을 자주 갔어요. 학교 1짱, 2짱과 게임을 하면서 친해졌죠. 나중에는 여자친구들까지 합류해서 동네 수영장에 놀러도 가기도 했습니다.

진심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제가 너무 찌질했지만, 어쨌든 졸업식까지 실컷 웃으면서 학교를 다녔네요. 그리고 다시 제가 많은 집단에서 스타가 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던 디아1짱 소동에 종지부를 찍었죠. 그 후 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게임에 있어서만큼은요. '나'라는 사람이 내세울 수 있는 것, 자신감이라는 것, 남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기분, 그런 걸 처음으로 알게 된 거죠. 가장 깨기 어려운 첫 번째 껍질을 비로소 깨고 나온 겁니다.

깨달음도 얻었죠.

내가 좋아하는 걸 정말로 정말로 열심히 하면,
어떻게 권력자 옆구리에서 한 자리 해먹을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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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절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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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라는 단어에는 언제나 '현실이 아닌 것', '현실 바깥의 것', '시간낭비', '쓸데없음'이라는 전제가 당연하다는 듯 깔리고는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저는 게임을 통해서 게이머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적절한 도전과 보상을 제공하기만 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헌신할 수 있는 자세를 게임에서만큼 잘 체득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개나 될까요.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느껴질 때조차, 내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지 못한 것들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몇 개나 될까요.

가상현실이라는 공간은 특히 청소년기에,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스스로가 깨우칠 수 있는 공간이고, 더 나은 방향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온라인 게임 속에서, 나는 물건을 팔 때 어떻게 파는 사람인가를 알고, 사람들과 협동을 할 때 어떤 역할을 선호하는 사람인가를 알고, 어려운 상황 앞에서 무슨 행동을 하는 사람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지기 위해 게임 속에서 노력합니다. 게임 속에서 더 나은 나를 만들면, 현실에서도 그런 내가 되려고 노력하죠. 그리고 저는 조금씩 게임 속 나와 현실의 나를 '동기화'합니다. 게임에서 이렇게 해 보고, 괜찮으면 현실로 가져오죠.

게임에서 뭔가를 해냈다면, 현실에서도 뭔가를 해낼 수 있다.
게임 속에서 누군가가 날 따르고 좋아해주고 믿어준다면,
현실에서도 누군가 날 그렇게 생각해 줄 것이다.

이런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는 것. 돌아보면 이런 과정들이 참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현실 속에서 제가 많이 힘들고 흔들릴 때마다, 예전의 저를 찾거나, 다잡기 위해서 게임을 했었던 적도 있었죠.

문득 드는 생각인데, 일기를 쓰지 않은 지도 참 오래됐네요.

흠ㅋ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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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핑크 가라사대

스무 살에 이걸 하고 다음에는 저걸 하고, 하는 식의 계획은 내가 볼 때 완전히 난센스다. 완벽한 쓰레기다. 그대로 될 리가 없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해서 절대 예상할 수 없다. 대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라. 그래서 멋진 실수를 해라. 실수는 자산이다. 대신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멋진 실수를 통해 배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