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이 블로그에는 게임만 보면 짖는 개가 살아요

2014년 11월 2일 일요일

[시 + 시스템 = 詩스템] 혹은 Ditigal Poetry


Code is Poetry.

'코드는 시(詩)다.'
익히 들어보셨을 워드프레스의 개발자들이 내건 슬로건입니다.

코드가 어떻게 시라는 것일까요?

이번 포스팅의 원활한 이해를 위해 잠깐 몇 가지를 짚고 넘어갈게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 통신과 정보 처리에서 부호나 코드(code)는 정보를 다른 형태로 변환하는 규칙을 의미한다.
  • 소스 코드를 줄여서 ‘코드’라고 하기도 한다.
라고 하네요.
그러면 소스 코드라는 건 뭘까요?

소스 코드는 컴퓨터 프로그램 제작에 사용되는 언어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람이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기술한 글',
쉽게 말하자면 '사람의 언어로 번역된 기계어'라고도 할 수 있겠슴다.


HTML이란 언어의 기초적인 형태인데요.
사람의 언어로 번역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무슨 말인지... 흠...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첫 번째 줄의 '!DOCTYPE'은 document type, 문서의 종류입니다.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문서 종류에 대한 구체적인 명령.

따라서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장이 구성되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꾸거나 만들고자 하는 대상을 '불러내서' 내용을 '명령'하기.
문법이 틀렸거나, 실행할 수 없을 때 컴퓨터는 오류 메시지를 출력하죠.

이러한 도구/ 방식을 통해서,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지금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도 프로그램의 일종이죠. 익히 아시는
워드 프로세서들, 컴퓨터 백신, 게임들 모두가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모든 프로그램은 각각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이용해서 문서를 만들고, 작업을 하고, 게임을 하죠.
따라서 코드를 만진다는 건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됩니다.

그러면 이런 코드가 어떻게 '시(poetry)'라는 것일까요?
시라고 한다면 보통 이런 걸 떠올리실 겁니다.



한 손에 잡히는 작고 얇은 시집 한 권. 한 편에 몇 줄 되지 않는 구성.
종이라거나 손글씨가 어울리는, 뭔가 고즈넉하고, 뭔가 옛스럽고...
삶에 대한 통찰, 허름한 차림의 시인, 텅 빈 주머니와 단칸방(??)

맞아요.
하지만 이것만이 시는 아닙니다.

지금부터 여러분께 소개해드리려고 하는 건,
Digital Poetry,
'전자 시' 입니다.


1969년의 'SWAN AND SHADOW(백조와 그림자)'라는 시입니다.
시인들은 더 이상 선형적인 글자의 단순 배열에 그치지 않고,
소재나 주제를 적극적으로 시각화하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죠.


컴퓨터가 조금 더 발전하고 표현 수단이 늘어나면서, 
애니메이션 효과를 통해서 더 주제를 적극적으로 나타내려 합니다.

뭐... 가독성을 상당히 해치기는 하지만요. 
혹시 내용이 궁금하실까 싶어 영문 번역글을 첨부합니다.
Title: Heartbeat
Nothing can equal the intense feeling of a young man’s heart whenever he is with the lady of his dreams. Every smile, every glance are given sweet meanings. Oh, that thing called love! Brings chills to the bones! How wonderful! Like a sudden raindrop in a long dry summer, extinguishing the thirst of a dragonfly in search of a flower’s nectar.  But his nervousness reminds one of the steps of a field animal walking on the meadows, his chest thumping. Thump…thump…thump!

꿈 속의 여인과 함께 있을 때마다 젊은 남자의 마음에 그득해지는 강렬한 느낌은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다. 그녀의 미소 하나, 눈짓 하나하나에 달콤한 의미가 깃든다. 오, 사랑이라 불리는 그것! 뼛속까지 스미는 한기처럼 화들짝 놀라게 만든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기나긴 건기, 갑작스레 퍼붓는 소나기처럼, 꽃의 꿀을 찾는 잠자리의 갈증을 끝장내 버리는. 하지만 머뭇거리는 그는 목초지 위를 거니는 가축의 발걸음을 떠올리고, 그 목초지가 곧 자신의 가슴임을 알아채네. 쿵...쿵...쿵!



하얀 종이를 벗어나, 아예 시간성을 포함하는 영상의 형태로
만들어진 시도 생겨났죠. 디지털 미디어와 시가 결합하면서,
시는 다양한 감각을 직접 표현할 수 있게 됐어요.

상징, 은유, 직유, 환유, 짧은 글 속에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펼치는 '문학의 꽃', '문학 생태계의 최상위포식자'(아, 이건
제 의견입니다만...)라 불리는 시는 디지털 미디어라는 날개를
달게 되면서, '시'라는 한계를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시'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글자, 소리, 이미지, 움직임, 영상, 상호작용 인터페이스 등
다중 미디어를 활용하는 '미디어 아트'의 형태로 표현된 시.

위에서는 기초적인 형태의 디지털 시를 보여드렸는데요.
최근의 디지털 시가 어디까지 나아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동시대의 시인 한 명을 소개할까 합니다.

Jasonnelsonpoet.jpg

제이슨 넬슨은 디지털/ 하이퍼미디어를 사용하는 시인 겸 예술가로,
플래시 게임에 예술을 접목시킨 창작물로 유명합니다. MIT에서 운영하는
전자문학 조직위원회(the Board of the Electronic Literature Organization)와
지속적인 협업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가 만든 창작물에 이름을 붙이기란 상당히 난해합니다.
영어로 쓰면 'artistic flash games/ essays' 정도가 될 텐데요.
백문이 불여일견, 그의 대표작 중 하나를 직접 가져와 봤습니다.

내용도 난해한 데다가 언어가 영어인 만큼, 내용 측면보다는
게임을 통해서 시를 풀어나가는 방식 자체에 주목해 주세요.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Game, Game, Game and Again Game>


*PC에서 실행되지 않는다면 Adobe Flash Player를 설치해 주세요.
*모바일 환경에서는 플래시가 구동되지 않습니다. 꼭 모바일로 봐야겠다 하신다면,
*<game, game, game and again game>에 대한 상세한 소개 (영문)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하단 링크를 클릭하면 이동)

jason.nelson's.digital.poetry.interfaces

의 디지털 시 소개 코너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습니다.

언어와 함께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하는 작가들이 기술과 시를 결합하면서
디지털 시가 태어났다. 
소리, 이미지, 움직임, 영상, 상호작용 인터페이스, 언어가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와 시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성공적인" 축에 드는 인쇄매체의 시가 백 명을 사로잡는 데 반해,
"game, game, game and again game" 같은 작품이 수백만의 독자를
사로잡는다면, 디지털이야말로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 게임, 혹은 이 시를 플레이하면서 여러분은 화면에 떠오르는
텍스트나 영상 등을 마주하게 됩니다. 먼지 덩어리처럼 생긴 것을
키보드(화살표 키, 스페이스 바)로 조작하면서요.

게임 내 오브젝트(사물)과 접촉하지 않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길 수도 있어요.
그건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비록, 게임 시스템을 접목시킨 이유가 모든
오브젝트(가상의 사물)와 상호작용하도록 의도한 것이라 해도요.

이게 어떻게 시(詩)라는 것일까요?

디지털 시가 시로써 성립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종이에 글자로만 적힌 시를 지금부터 살펴볼게요.

지난 마이픽에서 언급한 김경주 시인을 기억하시나요.
그의 두 번째 시집에 실린 시이며,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기담(奇談)」입니다.
다른 시를 한 번 가져와 봤는데요. 바쁘신 줄 알지만 느긋하게 읽어 주세요.


지금 어떤 기분이 드나요?

오묘하다, 기괴하다, 말 그대로 기담 같다, 으스스하다,
됐고 치킨이나 먹고 싶다, 빡친다, 못 알아먹겠다, 엄마 보고 싶다,
희망차다, 새벽 냄새가 난다, 푸르딩딩하다,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저마다 다르겠죠.

        '묻혀 있던' 지진.
자식으로서 태어나 '다시 꾸게 되는' 태몽.
'이상한 줄을 토하는 인형', 
'태내로 기어 들어가서야' '다시 흘릴 수 있는 피'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이런 상상을 했어요.

부모에게 물려받은 DNA 지도대로 살아가는 '운명'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획득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다시 태어나기 위한 여행담이라고 할까요.

이 시를 읽으면서 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진로 문제로 부모님과 격한 갈등을 빚던 시기였죠.
아직까지도 완전하게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만. ^^;

나이를 먹고, 머리가 커지고,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단순한 과정 속,
제가 겪었던 많은 일들이 겹쳐 읽히면서 하얀 여백 속으로 제 이야기가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었죠.

그래서, 인형이 토하는 이상한 줄은 바로 탯줄이라고 읽혔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만, 여러분은 무엇을 상상하셨나요.

각 연에 사용된 낯선 시어들에 대한 해석이 저마다 다를 겁니다.
눈길을 오래 붙잡은 단어도 다를 거고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단어나 문장조차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우리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면서 살아가는 타인이니까요.
뭐 그렇다 해도, 시를 읽는 방식은 비슷합니다. 오랫동안 어떤
단어나 문장에 시선이 머물다가,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지요.

어느 부분에 시선을 뗄 수 없는 경우는 대충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문장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았거나, 뭔가 와닿기는 하는데 그게 흐릿할 때.

애매하고 흐릿한 느낌이 들면 저는 계속해서 속으로 읽어봅니다.

생각을 비우고 그냥 마음 속으로 곱씹으면서 계속 되뇌이다 보면,
'나만의' 어떤 감정이나 기분, 느낌 같은 것이 점점 선명해져요.

뭔가를 느꼈다는 건 내가 그 문장을 이해했다는 겁니다.
말로 하기 힘든 어떤 것, 말로 굳이 쓰지 않아도 좋은 것.

해명되지 않는 문장을 이해하고 나면, 그 문장 앞뒤에 있는 다른
부분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고, 시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시인이 무엇을 의도했는지를 알 수가 있는거죠. 하지만,

시의 모든 문장을 이해해야만 완전한 감상일까요?
시인의 의도를 모두 알아야만 시를 제대로 읽은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글자는 경험을 전달하는 미디어 중 하나이기 때문이고,
시라고 불리는 글자의 조합은 시인의 경험에서 나왔기 때문이고,
시인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A라는 경험이 A'라는 글에 담겨 있다고 해도, 그걸 읽는
사람은 결코 A를 떠올리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한테 없는 거잖아요.
대신, A'라는 글자가 읽는 사람의 경험 중 어떤 것을 끄집어 냅니다.

아무것도 끄집어내지 못할 수도 있죠.
그래서 마음에 와닿지 않는 문구, 혹은 한 편의 시 전체가 내게
아무런 의미도, 느낌도, 감정도 주지 않는 경우가 생겨요.

전 시집 한 권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시 하나만 찾아도,
성공적인 독서라고 평가합니다. 누구나 그런 건 아니겠지만요.

아무튼 시가 와닿지 않는 경우가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겁니다.
시집을 읽는 건 시인이랑 소개팅을 하는 거예요.
마음에 들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수용자 자신에게 맞게 취사선택한다는 것.
이것은 시가 갖는 시스템적 속성에서 비롯합니다.

시 = 시스템!

시를 구성하는 시어/ 행/ 연이라는 단위는 모두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끄집어내고 재구성하는 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독자는 자신에게 맞고 자신에게 필요한 글만을 선택해
자신의 방식대로 경험을 재구성하게 됩니다.

소설처럼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기억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시는 독자의 경험을 스스로 끌어내고 재구성하는 데 쓰이는 도구를
제공할 뿐입니다. 시가 소설이나 타 문학장르보다 독자의 경험이나
감상능력에 더 의존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시는 의도적으로 행간을 배치해서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글자가 없는 하얀 여백은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고 곱씹을 수 있는 심리적인 공간이고요.

종이와 글자로만 이루어진 시가, 그 어떤 문학 장르보다도
훌륭하게 디지털 미디어와 결합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러한
시스템적 속성에서 기인합니다.

시스템적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시가 그 자체로 완결되는
콘텐츠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시스템 콘텐츠가 완성되는
지점은 바로 수용자입니다.

시스템 콘텐츠는 수용자가 스스로 완성할 수 있도록
'놀이터'와 '놀이기구'를 제공할 뿐입니다.

흥미를 끄는 컨셉의 놀이터가 있고, 내 마음에 드는 놀이기구가
있습니다. 당장 달려가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겠죠!


이 지도는 최근 제가 분석하고 있는 <서든어택>이라는 총싸움 게임의
'제3보급창고'라는 전투 맵입니다. 여기서 4명이나 5명씩 한 팀을 이뤄,
2개의 팀이 실력을 겨루게 되는데요.

이 맵은 단순히 말하자면 '선택지'만을 제공합니다. 상대 진영으로
침투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와 수단을 주고, 나머지는 플레이어가
직접 전략과 전술을 짜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죠.

이것은 <서든어택>이 제공하는 '놀이터'입니다.

그리고, 기계나 총에 쓸데없이 흥분하는 남자들을 위해서 다양한
총기류를 제공하는데요.


먼 거리에서 잡는 것이 좋으면 저격총을, 쉼 없이 뛰어다니며 가까운 거리에서
적을 제압하고 싶다면 돌격소총을 선택하게 됩니다. 수많은 총기 중에서, 내게
잘 맞는 총은 몇 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하나일 수도 있고요.

이것은 <서든어택>이 제공하는 '놀이기구'입니다.

생뚱맞은 조합입니다만, 김경주 시인의 「기담」과 <서든어택>을
한 번 비교해 보겠습니다.


GAME
장르
문학-시
게임-FPS
제목
『기담』(시집)
<서든어택>
놀이터
「기담」
(수록된 시)
3보급창고
(전투 맵)
놀이기구
시어(詩語):
지도/ 태몽/ 이상한 줄 등
총기류:
AK-47, M4, CM901 

시집 『기담』을 펼친다 : <서든어택>을 실행한다
「기담」이라는 시를 읽는다 : '제3보급창고' 전투 맵을 선택한다
시어(詩語), 문장 중 끌리는 것을 찾는다 : 총기류 중 마음에 드는 총을 선택한다

 나의 경험을 겹쳐 읽고 여백에서 재구성한다 : 전쟁 영화의 주인공 이야기를 만든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이제 슬슬 글을 마칠 때가 되었군여.

스토리텔링은 단순히 기승전결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만들어서
"옛날 옛적에..."하고 남에게 들려주는 것 이상을 포함합니다.

수용자 참여가 가능한 인터랙티브 콘텐츠 제작이 가능해짐에 따라,
'이야기를 직접 만들도록 유도하는' 미디어 콘텐츠가 등장했죠.

글, 이미지, 소리, 영상 등 그 어떤 미디어든 스토리텔링의 좋은
수단이 되고, 이제는 이러한 수단을 '시스템'으로 만들어 수용자
스스로 완성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 것이죠.

조금은 낯선 소재였는데, 흥미롭게 읽으셨을지 모르겠네요.

그럼 다음에 또 만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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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핑크 가라사대

스무 살에 이걸 하고 다음에는 저걸 하고, 하는 식의 계획은 내가 볼 때 완전히 난센스다. 완벽한 쓰레기다. 그대로 될 리가 없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해서 절대 예상할 수 없다. 대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라. 그래서 멋진 실수를 해라. 실수는 자산이다. 대신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멋진 실수를 통해 배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