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이 블로그에는 게임만 보면 짖는 개가 살아요

2014년 11월 24일 월요일

<저니>,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여행을 떠나다

ALERT!
*본 포스팅은 <저니> 게임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되, 
세부적인 내용 일부를 가감, 수정하여 편집한 내용입니다. 
*<저니> 게임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꽤 포함되어 있습니다.


1

from Nascence to the Calling

허공에 소리를 질러대는 한 남자를 보았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무심히 지나치려 했으나, 못내 발걸음이 멈췄다.

말을 토하고 있었다. 담배 연기처럼 내뿜고 있었다. 허
공을 울리는 목소리가 울고 있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을 변호했다. 구경거리가 되면서까지
소리를 질러야만 하는 이유.

죽는 순간에 했던 행동을 반복하는 귀신들이 떠올랐다.
그처럼 계속 죽고 있었다.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듯.

살고 싶다는 듯.

사회적이거나 경제적이거나 그는 파편적으로 죽었다.
사람과 귀신의 경계 어디쯤에서, 이해할 수 없고 받아
들일 수 없는 것과 싸우고 있었다.

목숨을 건 싸움이었을 것이다.

삶을 이을 것인가, 아니면 버릴 것인가.

그가 숨을 고르기 위해 한 호흡을 들이키는 찰나, 나는
그의 속으로 들어갔다.


2

First Confluence

안녕하세요, 게짖갭니다.

'포스팅 시작이 왜 이 따위인가!'에 대해 설명을 먼저 드려야 할 것 같네요.

이전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오늘은 <Journey>라는 게임이 어떻게 '힐링 게임'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는가를 살펴볼 겁니다.

처음엔 게임 내의 그래픽, 사운드 등 표현 기법을 중심으로 분석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좀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기에 다른 방식으로 <저니>를 보여드릴까 해요.

오늘 포스팅의 목차입니다.
↓이거 들으면서 썼는데, 들으시면서 보면 쪼금 더 좋을지도 몰라여!



1) Nascence (0:00)  
2) The Call (1:42
3) First Confluence (5:12
4) Second Confluence (6:47
5) Threshold (9:03
6) Third Confluence (15:01
7) The Road of Trials (16:35
8) Fourth Confluence (20:46
9) Temptations (21:47
10) Descent (25:55
11) Fifth Confluence (28:55
12) Atonement (29:44)
13) Final Confluence (35:50
14) The Crossing (37:52
15) Reclamation (39:45
16) Nadir (41:54)
17) Apotheosis (45:34
18) I Was Born For This (52:43

네. 이건 지난 포스팅에서 맛보기로 보여드렸던 <저니>의 전체 ost 목록입니다. 제목들을 차례대로 연결해 보면  <저니>를 따라 경험하게 될 이야기의 순서가 되네요. 순차적인 각각의 테마들은 <저니>를 만든 사람들이 만든 경험의 지도이기도 합니다.

태어나서(Nascence) 다섯 번의 합류(confluence)가 일어나고, 위기와 절정을 지나 맨 마지막 I was Born For This라는 깨달음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죠.

<저니>를 통해 사람들이 어떤 순서로 무엇을 경험하도록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인 만큼, <저니>를 이야기하는 좋은 방법이겠다 싶었어요.

앞서 등장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겁니다. 그리고 저는 다섯 번쯤 끼어들 거고요.

아, 이게 첫 번째니 앞으로 네 번 더요!


3

from Threshold to the Road of Trials

그의 마음은 사막이었다.

먼 곳에 거대하고 반짝이는 산이 있었고, 그 산을 향해
걷는 여행자가 있었다.

여행자는 사람인지 아닌지 아리송했다. 문양으로 장식된
붉은 망토와 두건, 등 뒤로 길게 늘어뜨린 스카프, 두건이
만든 그늘에서 반짝이는 눈동자.

편의상 '그'라 부르기로 하자.

두 팔을 망토 안에 감춘 그의 몸놀림은 가볍고 경쾌했다.
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길을 잃을 때마다 모래바람이 그를 부드럽게 가로막고,
산을 향해 나아갈 때는 살포시 등을 밀어주었다.

그가 산에 도착하기를 온 세상이 원하는 듯했다.

사막 곳곳에는 하얗고 반짝이는 스카프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조각을 주울 때마다 등 뒤의 스카프가 길어졌다.
스카프가 길어질수록 더 높이 뛰고 더 오래 공중에 머무
를 수 있었다.

그는 강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새파란 신입사원 때처럼.
부딪치고 깨지고 구르기 일쑤였던, 하지만 나날이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던 때처럼.

하지만 저 산에 이르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우선 걸으며 생각할 일이었다.



4

Second Confluence

<저니>는 사막을 여행하는 게임입니다.

사막이라는 세계, 빛나는 산이라는 목적지, 여행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지형과 그것을 돕는 동료와 아이템들이 있습죠.

목표는 간단합니다. 꼭대기가 빛나는 산까지 가는 것. 목표에 대한 동기부여는 환경 디자인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세상이 어디로 가라고 이야기한다고 하면 좋은 설명이 될까요.

친절한 화살표 같은 건 없습니다. 산으로 향하는 경로에서 이탈하면 모래바람이 슬며시 플레이어를 가로막을 뿐이죠.

"플레이어가 문제를 해결하고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인 게임 메커니즘은 캐릭터의 "이동"과 "움직임"입니다. "산(목적)을 향해 이동(방법)하는" 게임이니까요.

비현실적으로 "매끄럽고" "자유로우며" "유연한" 움직임을 위해 <저니>는 현실 속 인간의 움직임을 단순화시켰습니다. 거기에 비현실적인 요소를 더했죠. 실제보다 더 높이 뛰어오르고, 더 오래 공중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실제 여행자가 느끼는 해방감, 자유로움을 강화하는 요소만 살린 거죠.

그 밖의 요소로는 방해자(또는 방해물)와 기념품(또는 수집품)이 있습니다. 나를 가로막는 높다란 산이나, 예기치 못한 폭우, 소매치기 따위가 방해자라면, 기념품들은 여행 중간중간 의도적으로/ 우연히 얻게 되는 물건 또는 활력소 따위라고 볼 수 있어요.

<저니>에서는 위의 두 요소, 방해자와 기념품이 '게임 루프(game loops)'로 적용됐습니다. 게임 루프란, 플레이어에게 목적을 부여하고, 목적을 위해 극복해야 할 도전 상황을 주고, 승리에 대한 보상을 주는 일련의 반복적인 싸이클인데요.

방해자는 높은 언덕이나 지형지물, 그리고 기념품은 그런 높다란 방해물을 극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물건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저니>의 게임 루프는 다음과 같아요.

1. 아이템을 찾는다 (목적)
2. 아이템을 획득한다 (도전)
3. 지형 극복 능력이 상승한다 (보상)

순으로 게임이 끝날 때까지 플레이어가 반복 수행하도록 구성됩니다. 더 많은 기념품을 얻을수록, 점프나 활강을 가능하게 하는 스카프가 더 길어지고, 더 높이 더 오래 점프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면 더 어려운 난이도를 극복하는 것도 가능해지고요.

게임 루프의 반복성은 단순히 그 안에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고, "빛나는 산에 도달하기"라는 대목적을 훨씬 더 원활하게 이루도록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좋다는 거죠!


5

from Temptations to Atonement

그는 점점 더 높은 곳으로 뛰어오를 수 있게 됐다. 사막에
익숙해질 무렵, 바닥의 모래가 푹 하고 꺼지면서 그는 지
하로 빨려들어갔다.

다시 깨어난 곳은 어두침침한 사원 내부.

사원은 춥고 어두웠다. 애써 보이지 않는 하늘과 빛나는
산을 상상해 보았다. 훌쩍 날아오르려고도 했다. 스카프
가 사라졌다. 모두 허사였다.

이제 날 수 없다고, 조금씩 그의 마음 속에 의심과 불안이
싹텄다. 이대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을 물들였다.

주저앉는 순간 그는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또다시 도망치는 건가, 하는 중얼거림이 스치듯 지나갔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눈 감았던 과거들.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기 때문이 었다는 생각, 그러므로 이
곳에서 팔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

시간과 돈을 위해서라면 항상 주판을 두드렸다. 이용가치
가 없어지면 인연을 헌신짝처럼 내버렸다.

부디 다시 생각해 보라며 아내가 보낸 99통의 문자 메시지,
아내의 뺨을 치는 나를 목격한 딸아이의 표정, 바쁘단 핑계
로 뿌리친 친구의 손.

삭제, 삭제, 삭제.

그가 삭제한 것들 모두는 그의 날개였다. 쓸모 없어진 사람
은 바로 자신이었다. 여기는 날개를 되찾기 위하여 거슬러
와야만 했던 마음의 사막, 그 사막의 밑바닥이었다.

그는 현재의 마음으로 과거를 수정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앞으로의 미래는 바뀔 지도 모른다. 그는
날개 없이 지상으로 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을 이해하는 법을 막 배운 참이었다.


6

Third Confluence

게임으로서의 재미 이상으로, <저니>는 플레이어들이 더 깊은 '여행'을 경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니>는 '혼자서' 여행하는 게임이죠.

혼자서 하는 여행은 관광과는 조금 다릅니다. 관광이 '즐거움'에 초점이 맞춰진 여행이라면, 혼자 떠나는 여행은 '성찰'에 가까운 여행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에 혼자 가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 전혀 다른 공간, 전혀 다른 시간 속에서 홀로 존재할 때만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이 생겨나죠. 나 자신이 종종 낯설게 보이기도 합니다.

'낯설다'. 나 자신에게 '낯설다'는 감각이 가능해지는 순간 우리는 특별해집니다. 익숙한 인간관계, 익숙한 시공간에서 규정된 '나'라는 사람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게 되거든요.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글쎄요. 우리가 아는 우리라는 건 누구일까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느낀 감각 정보의 단순한 총합은 아닐까요. 취향이란 것도 어쩌면 타인이 내게 만들어 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아'라는 건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주관적인 믿음에 불과할지도 몰라요. 믿음이란 때때로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데요, 세계를 나 좋을 대로만 받아들이는 '자기합리화'가 그 예죠.

그래서 혼자 떠나는 여행은 '자기합리화'했을 지 모를 과거라는 책을 읽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겨보며 "왜 내가 그때 그랬지?" 생각하게 되거든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의식조차 않았던 것들요. 무심하게 지나쳐버린 일들이 현재 내가 겪는 문제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과거에 적힌 일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현재와의 관련성을 새롭게 만드는 것, 그래서 과거의 의미와 현재의 의미 모두를 새롭게 덧칠하는 것. '인생 업데이트'라고 부를 만한 성장이죠.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듯, 혼자 떠난다고 무조건 성장하는 건 아닙니다. 원래의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쓴맛과 시련과 멘붕이 필요하거든요.


7

from the Crossing to the Apotheosis

그는 종종 멈춰섰다.

고개를 들어 빛나는 산을 상상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상상력은 더욱 강렬해졌다. 신체는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
그러나 그의 정신은 점점 맑아졌다.

발걸음 하나하나에 서로 다른 의미가 깃들었다. 그가 잃은
날개의 깃털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물집이
잡혀 땅에 닿을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발바닥으로
죄값을 치르는 중이었다.

지상에 도착하자 스카프가 다시 생겼다. 그는 잃어버려야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음을 배웠다.

사막을 지나 산의 초입에 들어섰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눈발이 망토를 뒤덮어 스카프
도 무용지물이 됐다. 크게 고꾸라진 그는 눈 속에 파묻혔다.

그 때였다. 누군가가 나를 그가 있는 세계 속으로 불러냈다.
나는 그와 비슷한 차림을 하고서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정확
히 말하자면, 그가 파묻힌 눈 앞에.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눈 위로 올라온 그는 옷을 탁탁 털다가, 깜짝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내가 반갑다는 듯 방방 뛰었다.
내게 달린 팔을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그는 다시 눈 속에 파묻혔다. 나는 또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옷자락을 꽉 쥐고,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 했다. 바투 붙어 있을 때 스카프에 눈발이 쌓이지 않
았으니까. 함께 있으면 날 수 있었다.


8

Fourth Confluence

혼자서 여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죠.

제가 스물 한 살 때 지리산 종주에 꽂힌 적이 있었습니다. 산장에서 2박을 머무르고 총 3일을 등반하는 '종주'가 너무 멋져 보였죠. 등산배낭을 꾸리고 혼자 지리산으로 떠났습니다.

그때 전 산장을 예약하지 못했어요.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거죠. 다행히 등산 중간에 동행하게 된 소방수 아저씨가 자리 하나를 구해다 주셨어요. 큰일 날 뻔했죠. 산 무서운 줄 모르던 그 뻔뻔한 무식이라니.

땅거미가 일찍 지는 산장에서는 등산객들이 소주를 한 잔씩 걸치곤 하는데요. 거기 끼어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별이 엄청나게 뜬 하늘을 구경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죠.

아, 그 아저씨 아줌마들은 두 번째 날 제 잠자리를 구해 주신 분들이었습니다...

은혜를 갚겠다는 저의 공허한(;;) 약속에, 그분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중에 아저씨가 돼서 오면 너같은 꼬맹이들이 종주하겠답시고 올 거야. 그 꼬맹이들에게 똑같이 해 주면 된다."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멋진 말씀, 멋진 분들이시죠.

여행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람이란 상상 이상의 동질감과 유대감을 만드는 존재입니다. <저니>는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죠. 기본적으로 혼자 여행하지만, 플레이어 두 명을 랜덤으로 매칭시켜 함께 플레이하는 시스템을 게임에 넣었거든요.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 잊을 수 없는 풍경의 일부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은 겁니다.


9
*
I Was Born For This

거세지는 눈보라에 스카프가 찢어져 버렸다. 우린 안간힘을
쓰며 서로에게 다가가기를 거듭했다. 눈보라를 뚫고 벼락이
쾅 하고 쳤다. 난 정신을 잃었다.

이제 다 끝나버린 것일까.

눈을 떠 보니 우리 앞에는 인류의 조상이 서 있었다. 그를
이 세계로 불러들이고, 나를 그의 곁으로 소환한 장본인.
조상은 우리에게 살릴 가치가 있는가를 평가했다.
너희는 서로를 지탱하고 존중했으며,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마음을 다했고,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너희는 우리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죽음에서 부활시켰다. 빛을 향해 나아가도록.

스카프가 요란하게 빛났고 우리는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내가 무엇인지를 기억해냈다. 나는 이
남자가 버렸던 과거의 일부였고, 한때 그의 일부였다.

부분적으로 나는 그였다.

그게 내 발걸음이 멈췄던 이유. 내가 그의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 이 산은 그가 나를 다시 만나러 올 수 있는
통로였다.

우리는 정상까지 날아가, 천천히 빛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여기서부터 '나'라는 건 없을 것이다. 
나는 그의 일부가 되어, 다시 나로 돌아간다.
.
.
.

다시 눈을 뜨자 나는 서울역의 흡연 부스에서 깨어났다.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대체 전날 얼마나 술을 먹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가 무척 가벼웠다. 눈도 맑아진 느낌이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핸드폰이 위잉 하고 울었다.

아내가 보낸 100번째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10
*
Final Confluence

발로 쓴 오글토글 손발내놔 글을 읽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니>는 정말로 잘 만든 게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니>를 플레이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많은 것들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워낙 사적인 것들이라, 블로그와 같은 공개된 장소엔 구체적으로 올리지 못했을 지라도요.

사운드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UI 디자인, 레벨 디자인, 기타 등등등, 무엇 하나 빠진 것 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낸 게임이기도 하지만, 이 게임의 핵심은 바로 '텅 빈 기승전결'을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Journey and the art of emotional game design', Nick Harper, <The Guardian>, 2012.11.21, ref. time: 2014.11.23 15:23 pm

주인공 캐릭터를 주고, 목표를 주고, 방해물을 주고, 조력자를 줍니다. 그 후, 환경조건과 이동조건의 변화를 통해서 유저의 감정선을 의도적으로 끌어올리고, 다시 바닥까지 끌어내렸다가, 성층권을 돌파할 정도로 솟구치게 만들죠.

<저니>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기승전결을 만들었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적인 대서사시가 만들어졌을까요.

스토리의 힘이란 정말 위대한 것 같습니다! *^^*

그런 걸 이야기해 보려고, 굳이 무리수 오글토글 손발내놔 글을 같이 써서 보여드렸습니다. 죄송하네요. ㅋㅋㅋㅋㅋ...

그러면 오늘의 포스팅을 마칩니다!
또 만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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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핑크 가라사대

스무 살에 이걸 하고 다음에는 저걸 하고, 하는 식의 계획은 내가 볼 때 완전히 난센스다. 완벽한 쓰레기다. 그대로 될 리가 없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해서 절대 예상할 수 없다. 대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라. 그래서 멋진 실수를 해라. 실수는 자산이다. 대신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멋진 실수를 통해 배워라.